법은 책속에 갇힌 활자가 아니다!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법의 역동을 재판방청프로그램을 통해 느끼다.

손영조(대학생)

 저는 법과 관련된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조금씩 알아갔던 법의 매력을 이제는 사회의 첫발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대학을 지원 시, 로스쿨 도입으로 법학과가 사라지는 추세에 발맞추어 학교마다 신설되는 특성화 학부가 부각되었고 그 중 한 곳을 지원해서 법학을 공부하며 현재 로스쿨 진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제가 법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법전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습니다. 우르 남무 법전, 기원전 2100~2050년 사이에 제정된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 최초의 법전으로 이 법전은 수메르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역사의 산물로 생각하고 지나칠 수 있었음에도 이 법전이 제 마음을 머물게 한 까닭은 바로 서문을 읽었을 때였습니다.

“고아가 부자의 먹이가 되지 않고, 과부가 강한 자의 먹이가 되지 않고, 1셰켈을 가진 이가

1미나(60셰켈)을 가진 자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 우르남무 법전 본문 中>

법의 강력한 힘의 목적과 이유는 고아, 과부, 가난한 사람 즉 사회적 취약 계층까지 살기 좋은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것임을 느끼며 법의 시크하고도 따듯한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로스쿨을 준비하는 학부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후 ‘Just Courage’의 책을 통해 International Justice Mission이란 단체를 알게 되었는데, 이 단체는 실제로 법을 통해 세계적으로 착취와 불법적 구속으로 현대판 노예가 있는 개발도상국에서 사람들을 구하고(Rescue) 가해자를 철저히 처벌하고(Restrain) 법과 제도를 세우며(Rebuild) 피해자들을 회복시키고 자립(Restore)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국제 법조인 NGO단체였습니다.

이런 멋진 단체를 보며 저도 법조인으로서 신념을 갖고 강한 힘을 선하게 사용하고픈 열정이 솟아났고 이후 다양한 법학 과목들을 조금씩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사회적 이슈를 법적인 시각으로 다루는 ‘현대사회와 법’이란 필수 교양과목을 듣고 있던 중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제공하는 재판방청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등장하신 판사님은 자타공인 부러움의 대상이셨습니다. 진행을 맡은 판사님은 이제는 경력직만 판사만을 채용하는 추세라 보기 드문, 젊고 지적으로나 외양적으로도 출중한 분이셨습니다. 판사님께서 민사와 형사 재판의 기본적인 차이와 법적으로 분쟁을 해결함에 있어서 주요 작용하는 포인트들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사실 저는 학교 전공으로 민법과 형법을 공부해 보았기에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실무자가 경험에 근거해 설명해주시니 한층 더 교과서에 적혀 있던 개념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재판은 민사 재판으로 사인과 사인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들을 지켜보았고 대부분이 변론이 종결되는 재판이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민사 사건이 굉장히 많다는 점과 그 중에 국가를 상대로 한 배상 사건도 큰 비율을 차지한다는 점, 그리고 한 사건 당 할애되는 시간이 5분도 채 안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민사사건의 특성상 서류로 각 측의 주장을 듣고 판결을 해야 한다지만, 교과서로만 배웠던 저에게는 그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대학 도서관에서 벗어나 실제 적용되는 세계를 목도하니 법학이 더 이상 박제된 개념이 아닌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개념일 때의 진짜 모습들을 알게 되었고 저도 공부를 하며 주안점을 두어야 할 포인트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장소를 옮겨서 방청한 재판은 형사사건으로 그 중 첫 번째는 ‘사기’ 사건이었습니다. 사기의 구성요건을 배웠던 저에게는 조금 더 쉽게 재판 상황이 이해되었습니다. 제가 방청한 부분은 검사가 피고 측 증인을 심문하는 과정인데, 기망 행위를 야기한 것이 피고가 아니라 증인(사실 증인이 피고의 아버지임이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이라고 증인 스스로 이야기하는데, 검사는 이를 피고를 두둔하기 위한 주장일 뿐이며, 분명 피고도 이를 알 고 있었으며 적극적인 행위를 했음을 계속 피력했습니다. 검사님의 카리스마가 넘치시는 심문도 인상적이었으며 양측이 과열될 때마다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논점을 잃지 않게 이끌어가는 판사님도 크게 느껴졌습니다. 다만 증인이 계속 검사님의 질문을 회피하는 대답을 할 때마다 방청객으로서 답답함과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유죄임을 입증하는 단계마다 실제로 어려운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 이어진 재판은 최종 선고가 내려지는 재판이었는데, 보이스피싱을 한 부부에게 사기에 의거해 유죄가 선고되는 장면이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해당 부부는 한국인이 아니라 말레이시아 사람이었는데, 전문 통역관이 순차통역을 능숙하게 하면서 판결이 선고된 것이 특별한 경험을 한 듯했습니다. 부부는 범죄 행위가 상습적인 점과, 말레이시아로 돌아가서 범죄 행위를 중단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다시 한국에 돌아와 이를 이어했다는 점, 보이스 피싱의 죄질이 나쁘다는 점 등은 불리한 측면으로 참작 되었고, 부부 모두 자백하고 죄를 반성하고 있다는 점, 범죄의 행위가 단순하다는 점 그리고 생후 1년 된 아이가 있다는 점 등은 유리하게 참작되어 부부 모두에게 징역 1년 6개월 실형이 선고되었고 다만 아내에게는 아이를 위해 집행유예 3년이 선고 되었습니다. 사람의 자유를 빼앗는 형벌인 만큼 다양한 요인이 입체적으로 고려된다는 점과 속지주의가 적용되고 있다는 현장을 경험하여 배움의 시각을 확장하였습니다.

모든 방청을 마치고 다시 처음 진행하신 판사님 앞으로 가서 몇 가지 질의응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실무와 학문의 차이에서 느꼈던 점들을 발표하며 판사님도 처음에 그러한 괴리를 느끼지 않았는지, 지금 돌이켜본다면 학문의 영역을 어떻게 공부하실 것인지를 물어보았습니다. 판사님께서는 학문의 영역에서 난무하는 학설들을 실무자의 입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논리적 수단으로 간주하시고 다양한 상황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예비 무기로 학설들을 정리하며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는 답변을 주셨고 그 외에도 학문이 이상적인 성격이 강한 까닭에 실제 재판에서 반영되지 못하는 부분들을 오해 없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재판참관 프로그램은 제가 미약하게나마 배웠던 법학 지식들이 실제 어떻게 활용되고 적용되는 지를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저의 예상과 실제로 적용되는 모습들은 달랐지만, 실무를 방청하니 더욱 법 공부에 대한 의지와 새로운 관점들이 생각나게 되었습니다. 가령 교과서의 물음에만 국한하지 않고 스스로 질문을 해보고 상황을 가정하며 실제 있을 법한 조건들도 검토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법조인의 꿈을 갖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법의 강력한 힘이 필요한 곳에 영향을 끼치길 소망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법의 강력한 힘을 평범한 일상 속에서 분쟁을 해결하고 위법한 상태에서 권리를 구제하며 정의를 끊임없이 세워나가는 실체를 재판 방청 프로그램을 통해 느꼈습니다. 나아가 앞으로의 꿈을 더욱 가슴 뛰게 만들어주는, 교과서에 갇힌 개념과 글자가 아닌 실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살아있는 법학을 느끼게 된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